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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최초 ‘변호사 출신 구의원’ 해운대구 한병철 당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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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실시된 제6회 전국동시 지방선거에서 부산 해운대구의회 의원으로 당선된 한병철(30) 씨. 그는 이번 당선으로 ‘전국 최초의 변호사 기초의원’이라는 이색 타이틀을 거머쥐는 영광도 얻었다.

한 씨는 구의원 선거 출마 직후부터 화제의 인물로 꼽혔다. 이는 1991년 기초의회 의원 선거가 시작된 이래 수많은 시·군·구의원들이 탄생했지만, 정작 변호사 출신 기초의원은 단 1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의회도 법을 다루는 입법기관이다. 하지만 그동안 기초의회에 변호사 출신이 없었던 것은 기초의회를 얕잡아 보는 법조계의 시각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정치인으로 성장 위한 발판?
보람된 일 찾아 여기까지 왔을 뿐…
‘당선 위해 여당 갔다’ 비난 안타까워
합리적 보수 지향, 새누리 선택
무료 법률 상담 등 전문지식 활용
주민 곁에 서는 일꾼 되겠습니다”

한 씨 역시 지방선거 출마 전 이 같은 사회의 인식에 적잖은 부담을 느꼈으나 변호사의 허울과 허례허식을 벗어나기 위해 과감하게 구의원에 도전장을 내밀었다고 한다.

지방선거 다음 날인 지난 5일 오후 해운대구의회 건물에서 구의원 당선인 신분으로 기자와 만난 한 씨. 183㎝ 큰 키의 건장한 청년이었다. 곱슬머리를 단정하게 뒤로 넘긴 그의 모습에서 애써 어리지 않게 보이려는 의도가 읽혔다. 그러나 서글서글하게 웃는 얼굴에서 20대를 갓 넘기고 ‘초보 정치인’의 길에 들어서려는 앳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한편으로는 젊은 나이에 현실 정치에 뛰어든 만큼 정치적 욕심이 클 것도 같았다. 변호사가 된 게 정치인으로 성장하기 위한 발판으로 삼으려 한 것 같기도 했다.

한 씨는 “그런 오해를 하는 분이 많다. 하지만 개인적인 정치 야망이나 큰 목표를 갖고 정치에 나선 것이 아니라, 보람되고 잘 하는 일을 하려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말했다.

한 씨 스스로 자신은 특별한 사람이거나 굴곡 있는 삶을 살아오지는 않았다고 한다. 부산에서 자라고 서울의 한 사립대 법대를 졸업했으며 육군 장교로 근무했다. 그리고 지난 2월 부산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는 것.

“법대에도 뚜렷한 목적을 갖고 진학한 것은 아니다”는 한 씨는 “굳이 정치인의 자질을 내세우라고 하면 주변 의견에 쉽게 휩쓸리지 않는 편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밝혔다. 과욕의 정치 입문자라면 없는 말도 그럴싸하게 지어낼 법한데 한 씨는 솔직하다는 인상을 풍겼다.

평범했던 한 씨가 정치에 대해 본격 고민하게 된 것은 2012년 전국 로스쿨 학생협의회 회장으로 활동할 때란다. 특히 이번 지방선거 출마에 뜻을 두게 된 것도 비교적 최근인 로스쿨 시절이라고 했다. 그는 장교생활을 마치고 곧바로 로스쿨에 입학하다 보니 남들보다 학회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편이었다. 자연스레 부산대 로스쿨 학생회장이 되었고, 전국 로스쿨 학생회장 선거까지 나가게 됐다.

한 씨는 “전국 로스쿨 학생회장을 역임하면서 특별한 사람이 다수를 대표하는 게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 평범한 사람들을 대표할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자신도 ‘풀뿌리 민주주의’의 지역 일꾼과 대변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는 것이다.

새누리당 당원이 된 것 역시 부담이었다고 한다. 그는 “젊을수록 진보에 가까운데, 당선을 위해 여당을 택했다는 비난이 일 것 같았다. 로스쿨 학생 게시판 등에 비슷한 글도 많이 올라왔다”고 말했다.

한 씨는 결국 스스로 ‘합리적 보수’를 지향하기 때문에 당을 정했다 한다. ‘눈여겨본 정치인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법조인 출신 제주도지사 당선인인 원희룡 전 의원이라고 답했다. 여당 내 쇄신파인 원 당선인은 합리적 보수란 평가를 받는다.

한 씨는 “대학 시절 운동권 학생회가 학생 등과 동떨어져서 움직이는 걸 보고 실망했는데, 비운동권 학생회도 결국 비슷하게 움직였다”며 “조직 자체의 이념적 성격보다 대표들의 의지가 구성원들과의 소통을 결정짓는다는 걸 알게 됐다”고 강조했다.

소통이 중요하다는 한 씨의 생각은 선거운동에서도 드러났다. 그는 작은 승합차에 사진을 붙인 것으로 유세차를 대신했다. 변변한 선거사무실이 없어 서류업무 등은 모두 집에서 해결했단다. 대신 새벽부터 거리를 돌아다니며 구민들을 만나는 것에 주력했다. 뿌린 명함만 6만여 장. 당에선 좀 더 효율적인 선거운동을 원했지만 현장에서 직접 소통하는 운동방식을 고집했다고 한다.

한 씨는 “선거운동 기간 20여 명의 주민에게 법률상담을 해드렸다”며 “변호사 타이틀을 내걸고 당선됐으니 구 예산 심의나 무료 법률상담 분야 등에서 최대한 전문성을 살리는 구의원이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앞서 한때 지역 변호사 업계에선 한 씨의 출마가 논란을 불러왔다. 더욱 큰 정치판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충고와 법률가도 밑바닥 정치부터 시작해 올라가야 한다는 주장이 충돌한 것. 그 답은 향후 한 씨의 의정활동과 정치적 입지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지역민의 입장에서는 선망의 변호사 직업을 던져버리고 구의회에 입문한 한 씨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얼마나 초심을 유지하고 있는지, 여전히 구민들과 잘 소통하고 있는지가 훨씬 궁금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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